자연에서 얻은 상상, 전통 기법에 담다

자연에서 얻은 상상, 전통 기법에 담다

디 자 이 너 김 상 윤
한 것보다 할 일이 더 많은 젊은 디자이너의 패기와 열정을 지켜보는 일은 즐겁다. 미래를 섣불리 점칠 순 없지만 그가 뚫어온 지난 길은 정확한 방향으로 곧게 뻗어 있다. 트렌드를 쫓는 명품의 카피가 아닌 자신의 스튜디오에서만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돋보이는 인터뷰였다.

디자이너 김상윤의 작품들은 늘 그와 함께한다.
이번 호 표지에 등장한 연꽃 조명과 산봉우리, 산의 등고선을 표현한 찻잔과 플레이트.

공간 디자이너란 직업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낮습니다.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면, 그 안에 어떤 형태로든 공간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고민하는 직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조명이나 가구 등 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작업의 대상이 됩니다. 예컨대 <설화수> 표지에 실린 조명을 만드는 것도 저의 몫이죠. ‘VENICE DESIGN 2016’에 참가했다가 만난 뉴욕의 한 셰프는 자신의 음식을 모티브로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이자, 저술가이기도 하더군요. 그 순간 제가 가지고 있던 경계나 장르에 대한 그간의 고정관념이 허물어졌죠.


스튜디오 경영과 디자이너 겸업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아주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시네요. 하나의 제품을 완성하기 위해선 최소 3개월에서 6개월의 기간이 필요한데, 디자이너로 몰입하는 기간 동안 회사의 경영 상태가 악화되기 마련이죠.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적절한 분배가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우리의 산업구조가 아주 낙후 돼 있다는 겁니다. 기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구조상의 모순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장인이 양성되지 못하기 때문이죠. 아주 작은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도, 불필요한 시행착오와 소통 부재가 반복되기 때문에 애를 먹습니다. 특히 작품 수준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완벽한 ‘마감’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만약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6개월씩 걸리던 기간을 훨씬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전통 장인들과의 협업은 어떻게 시도하게 된 것인가요? 또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현재의 스튜디오를 설립하기 전부터 장인들과 협업을 해왔죠. 따지고 보면 디자이너와 장인 간의 협업 초기부터 관여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백선디자인에 근무하던 시절, 소목장분들과 한국다운 느낌의 가구를 제작하면서 우리만의 아름다움을 체득해왔으니까요. 거기서 깨달은 가치, 즉 한국 디자인의 독보성을 현재 스튜디오의 아이덴티티로 정립해가고 있습니다. 물론 양면성은 있습니다. 수백 년간 이어진 조상의 정신과 고유한 제조 방식을 발견하는 일은 큰 즐거움입니다. 반면, 각기 다른 작업 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소통에 문제가 없을 수 없죠. 그래서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즐거움도 있다고 말씀릴 수 있겠네요.


표지에 등장한 조명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조명의 가운데를 보면 뭐가 연상되세요? 크리스마스 때 볼 수 있는 ‘스노볼’이 떠오르죠. 거기에 착안해서, 사선의 나무 받침과 연꽃잎을 갓으로 접목한 제품입니다. 연꽃잎에 붙인 한지장의 한지가 빛을 받으면 아주 신비로운 반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제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난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우선 볼의 유리를 아주 얇게 하는 일이 어려웠고, 금분의 두께와 크기를 정하는 일도 그랬죠. 거기에 제가 원하는 시간에 금분을 분사하기 위해서는 내장된 회로 기판을 제작하는 일에 시간과 수고가 들어가야 했습니다.

스케치하는 그의 손길에서 자연과 전통이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입고 되살아난다.
달빛이 드리워진 모습, 난초에 달이 낚인 모습 등 동양적인 미감이 현대적으로 발현된다.

일반인은 전통 장인의 공예품을 보거나 소장할 기회가 적습니다. 이처럼 협업이 활발해지면 비교적 쉽게 우리 일상의 공간으로 들어오게 되겠군요.
전통 장인의 솜씨는 물론 그들의 정신을 담되, 리빙으로 즐길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죠. 예를 들어, 소목장 유진경 씨와 협업한 <숲 진 열장>은 귀한 손님에게 차 한잔을 대접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손으로 헤치고 숲속에 깊숙이 간직해두었던 소중한 잔을 꺼낸다는 상상을 디자인한 것입니다. 전통 짜맞춤 기법으로 제작했지만, 사방탁자의 남성적이고 미니멀한 느낌이 우리의 현실 공간에서도 따로 놀지 않도록 연출했습니다. 이것 역시 관상만이 아니라 리빙으로 즐기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 혹은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지 궁금합니다.
‘작품’이나 ‘영감’이란 단어는 너무 거창하단 생각이 듭니다. 전 그저 ‘제품’이란 표현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상상력의 근거는 자연이죠. 작품중에 낙죽 조명 <유맥流麥>이란 게 있는데, 보리 문양을 낙죽으로 새긴 것이죠. 이것을 비롯해 많은 제품들이 달이나 꽃과 같은 자연을 소재로 삼고 있으니까요.


그와 같은 상상을 구체화하기에 적당한 방법이 전통 기법과의 접목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외국 제품의 카피(Copy)가 아닌 한국이란 공간에서만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생산 과정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긴 하지만 긴 안목에서 보자면 그것이 상수上數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귀띔해주시죠.
큰 욕심보다는 제품 개발과 스튜디오 운영을 균형적으로 하면서, 지금까지 겪어왔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생산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앞으로도 상상해야 할 일이 많을 테니까요.

  • 글과 진행 최태원
  • 사진 전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