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과 한지로 빚어낸 ‘안개’손상우 아트퍼니처 작가

속담을 이불에 새겨 꿈길을 함께 걷다

이슬기 작가
27년째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그는 특유의 해학적 시선으로, “기하학적 패턴과 색의 힘을 통해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원초적으로 되돌려놓는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런 그가 전통 공예와 언어 체계의 접목에 주목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손상우 아트퍼니처 작가

작품 <이불 프로젝트 U>를 보면서 속담을 전통 공예와 결합해 시각화한 발상이 참신했습니다.
2002년 이후 전시회 참여로 한국을 오가면서 어렸을 때 보고 자란 것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오색 영롱한 색깔의 통영 누비이불도 그중 하나였어요. 프랑스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찾았는데, 1980~90년대에 봤던 건 더 이상 안 만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한번 만들어보려다가 작품으로까지 연결된 것이죠. 형식은 다르지만 속담과 전통 공예는 특정 민족의 지혜와 정서가 담긴 문화란 점에서 동질성을 갖습니다. <이불 프로젝트 U>는 그 두 문화의 연관성을 재해석하고자 한 것입니다.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색깔이나 구성을 임의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보편적 이불 문양 자리에 공동체의 염원이 담긴 속담을 넣으면 이불을 덮고 자는 이의 꿈에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습니다. 저의 이전 작품들이 이미 존재하는 물건들을 비틀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의 작업이었다면, <이불 프로젝트 U>는 인류학에 관심을 갖게 된 저를 대신해 ‘말하는 이불’이 된 셈이죠. 또한 통영의 누비 장인들과의 협업 역시 메시지 전달에 큰 도움이 되었고요


‘한지와 레진 소재 작품
‘한지와 레진 소재 작품
오랜 시간 한 물건을 만들어온 장인과의 협업을 통해 전통, 공동체, 사람과 물건의 관계를 이슬기 작가만의 시선으로 탐구한다. <이불 프로젝트 U>는 통영 누비 장인, <바구니 프로젝트 W>는 멕시코 원주민, <나무 체 프로젝트 O>는 프랑스 나무 체 장인과 협업을 통해 완성하였다.

작품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하셨는지요?
인간은 삶의 절반 가까이를 이불과 함께합니다. 그리고 이불을 덮는 순간은 현실과 꿈의 경계선에 있기도 하지요. 이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독특한 순간과 공간에 공동체의 문화인 속담을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습니다. 이를테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뛰어오르는 몸뚱이는 아래위로 누비고, 벌어진 작은 다리는 수평으로 누볐어요. 또한 우물 밖으로 나가고자 열망하는 개구리는 고동색으로 표현했고, 개구리가 있는 공간은 녹색을 썼습니다. 즉 색과 누빔의 방식에도 속담이 주는 메시지를 담고자 한 것이죠. 물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에게는 생소한 속담이지만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의 상황을 설명하면 곧 이해를 하더라고요.

<죽어가는 언어를 부르는 프로젝트>와 연관된 인터뷰에서 “바구니를 짜는 과정과 방법이 언어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좀 더 풀어서 설명해주신다면요?
어떤 인류학자들은 언어의 시초를 불의 발견과 연결시킵니다. 만약 인간이 숲을 태우는 번개를 관찰한 뒤, 추위와 조리를 위해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면 모닥불 형태였을 것이고, 모닥불 근처에 모인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분석이죠. 멕시코 오악사카 북부지방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익스카틀란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바구니를 짜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언어가 만들어진 과정과 바구니를 짜는 과정이 동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겁니다.

그곳이 인상 깊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200여 명이 사는 작은 산골마을이지만, 16세기 전에는 10만 명이 살던 대도시였고, 그들만의 언어가 있었다고 해요. 물론 지금은 고유 언어인 익스카틀란어가 사라지고 있죠. 익스카틀란어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네 분 정도밖에 없어요.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 중 하나죠. 제 <바구니 프로젝트>는 그곳의 전통 바구니가 연상시키는 풍경이나 단어를 소멸되고 있는 익스카틀란어로 이름 짓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합성한 바구니 두 개에 좀 더 작은 바구니를 수평으로 달아 이름을 ‘Sala kwashungu la shhû itzie ske’로 지었어요. ‘머리를 단정하게 땋은 젊은 여인’이란 뜻이죠. 그들의 전통 공예품과 사라지는 언어를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이불 프로젝트 U>와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 작품

전통 공예 장인과의 협업을 빈번하게 시도하고 계십니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모로코 리프(Le Rif) 지방의 산골마을 아인뷰스릭(Ain Bouchrik)에서 할머니와 했던 작업이 생각납니다. 모로코 수도 라바트(Rabat)에 있는 아트센터 ‘아파트22(appartement 22)’의 초대로 일 년 동안 다섯 차례 방문하면서 모로코 북부 산악에서 신석기 시대 모양의 도기를 만드는 여인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고장에서 전통적으로 만드는 토기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도기의 원형이라고 할까요. 유약을 사용하지 않을뿐더러 가마에서 굽는 대신 당나귀 똥과 짚을 섞어 말려서 둥글고 평평하게 만든 판을 같이 태워 굽더군요. 그때의 인연으로 그런 친환경적이고 전통적인 도기 제작을 누구나 배울 수 있게 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 <설화수> 매거진 표지에 실린 작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싹이 노랗다’란 제목의 작품으로 돋아나는 싹은 아래위 수직으로 누비고 나머지는 올라오는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수평으로 누벼서 대비시켰습니다. 통영의 누비혼 공방 정숙희 대표가 준비해주시면, 누비장 조성연 선생께서 누빔 방향을 맞추는 어려운 작업을 하여 나온 작품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열릴 전시는 언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 알고 싶습니다.
이곳 프랑스 사람들이 모두 바캉스를 떠났을 즈음인 9월 20일 브르타뉴 지방 대도시인 렌느의 아트센터 ‘라 크리에(La Criée Centre d’Art Contemporain de Rennes)’에서 있을 개인전 오픈을 준비하고 있어요. 새로 만들어야 하는 작품이 많아서 힘드네요. 프와투 지방 북서쪽의 민요를 바탕으로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그간의 작업이 공예와 구전문화의 접목이었다면, 향후 언어의 생성과 공동체의 접점에 좀 더 접근하고자 연구하고 있습니다.

‘손상우 아트퍼니처
<나무 체 프로젝트 O>는 프랑스에서 사용되던 원통형 용기인 ‘부아소’를 제작하는 장인과 함께했다. 체 안쪽을 나누고 높게 설치해 관람객이 작품을 아래에서 위로 쳐다볼 수 있도록 했는데 체 안은 ‘ㅕ, ㅜ, ㅏ, ㅣ, ㅛ’ 등의 한글 모음과 닮았다.
  • 글 최태원
  • 사진 갤러리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