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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성경

배우 김성경 배우 김성경

“마흔을 넘기면서 한 가지 지혜가 생겼어요.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죠.”

3년 전 쌀쌀한 겨울쯤 그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억을 되살리자면 그녀는 종합편성 채널이 생기 면서 프리랜서로 활동 영역을 넓게 다지려던 참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대충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 출렁이는 방송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장 같은 삶을 벗고 다양하게 도전하겠노라, 그녀의 다부진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후 그녀가 활동하는 모습을 종종 뉴스로 접하곤 했다. 예능 방송에서 속내를 시원하게 털어놓거나 시사 토크쇼에서 야무지게 진행하는 모습은, 어쨌든 예상하던 바였다. 그런데 말이다, 드라마 제작발표회에 등장한 그녀의 모습은 전혀 상상하지 못 했다. 그것도 한 번의 조연을 거쳐 바로 주연을 거머쥐었다니, 생각보다 대담한 전향이었다.

“신기하게도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요. 예능 프로에 나가서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시사 토크쇼 <강적들> 작가가 연락을 해왔고, 다시 <강적들>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드라마 제작사에서 섭외를 해온 거예요. 방송에서 얘기하는 모습과 주인공 캐릭터가 딱 떨어진다면서요.”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고 돌아섰다. 말도 안 된다면서. 그러다 언니(김성령)에게 전화를 했더니 의외의 지지 발언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진행자 위주로 활동했으니 이제 생각의 폭을 넓혀도 되지 않겠냐면서. 배우 언니가 밀어주니 그제야 연기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

굳이 첫 작품을 따지자면 지난해 방송된 SBS <청담동 스캔들>이었다. 자주 눈에 띄지 않는 역할이었지만 시청률만 21%를 찍었으니 첫 드라마 입성치고는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다 올해 MBC드라마넷에서 방영된 <태양의 도시>에서 당당히 주연을 꿰찼다. 성공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는 불도저 같은 역할이었다. 아니, 그녀 내면에 연기자로서의 세팅 버튼이라도 숨겨져 있었던 걸까.

“제작사 대표의 주문은 딱 한 가지였어요. ‘김성경 씨는 연기 배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보여주세요’ 했죠. 다행히 연기에 대한 주변 평가는 괜찮은 편이에요. 한 번은 조형기 선배가 저에게 ‘머리 잘 썼다’고 하더라고요. 어설프게 연기학원 가서 연기자 흉내 내는 것보다 너의 모습을 담백하게 보여준 게 더 좋았다고요.”(웃음)

하기야 최근 아나운서 출신 연기자들이 호평을 받는 경우가 잦아졌다. 백지연, 오상진, 여기에 그녀까지 합세해 연기자로 안타를 치지 않았는가. 이러한 성공에는 그녀 스스로도 인정하듯 아나운서들의 안정적인 발음과 발성이 뒷받침되어 가능했을 터였다.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이미 반은 연기 연습을 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1993년 SBS 아나운서로 방송을 시작했으니 그녀는 벌써 20년 넘게 방송가에서, 그야말로 종횡무진 생존하고 있다. 활동 중인 현역 선배를 꼽는다고 해봐야 정은아, 이금희 아나운서 정도. 그녀가 밝히는 생존 비법은 아주 간단했다. 자기가 맡은 일은 시원하게 추진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여기에 솔직하고 강직한 성격이 덧대어졌다. 맞는 것과 아닌 것이 확실하다. 좋고 싫은 것도, 분명하다.

“마흔을 넘기면서 한 가지 지혜가 생겼어요.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죠. 가령 아나운서 시절부터 기획이랄까 진행의 맛은 타고난 것 같았지만 남을 웃기는 재능은 아무리 감을 잡으려고 해도 잘 되지가 않더라고요. 요즘은 나에게 없는 것을 너무 욕심내지 말자, 그건 누군가의 도움을 받자 생각해요. 이번에 토크콘서트를 기획할 때도 큰 흐름은 제가 가져가고 못하는 건 과감하게 숙이에게 넘기면서 균형을 잡았어요.”

그랬다. 기획적인 장기를 십분 발휘한 것이, 최근 개그맨 김숙과 공동 진행한 오페라 토크콘서트 <나쁜 여자>였다. 유명 오페라 작품 속 여주인공을 심판대에 올려 시대별 여성 유형을 해석한다는 독특한 취지였는데 그녀는 기획부터 섭외, 진행까지 웬만한 동선에 거의 참여했다.

“이번 기획의 한 수는 개그맨 김숙과 저의 조합이죠. 우선 오페라와 김숙의 조합이 새롭고 저와 김숙의 연결도 신선하다는 평이 많았어요. 진행을 할 때도 서로의 장점을 확실히 살렸어요. 숙이가 관객들을 확 띄워놓았다가 제 강의로 마무리를 하니까 뭔가 정리가 되는 느낌이죠.”

공연이 성사된 데에는, 그녀와 김숙이 인간적으로 친한 것이 우선이었고 둘 다 예술 방면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다시 힘을 받았다. 한번 해보자 싶은 순간에 그녀의 기획력과 추진력이 빛을 발했다. 이미 오페라에 이어 발레, 미술, 국악 등 시리즈로 진행할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다니 부지런도 하다.

고백하자면 이번 공연에서 그녀가 예술에 대해서만 논했던 것은 아니다. 토크콘서트 이름이 ‘나쁜 여자’인 만큼 자신이 왜 나쁜 여자인지 관객에게 먼저 털어놓아야만 했다. 그런데 말이다, 자신의 삶을 원고지에 담는 일이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열 번을 넘게 고쳐도 자꾸 손이 갔다. 글 몇 줄이 나오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째로 씹어봐야 했다.

“김성경이 왜 나쁜 여자인지 말하는 부분을 계속 고치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정리가 되었답니다.”

“김성경이 왜 나쁜 여자인지 말하는 부분을 계속 고치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정리가 되었답니다. SBS <뉴스룸>에서 활동할 무렵, 전 실패라는 걸 겪어보지 못하고 승승장구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이혼을 했고 사표를 냈잖아요. 갑자기 나를 감싸던 가정과 회사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동시에 사라졌던 거예요. 그제야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게 원리원칙을 지키면서 솔직담백하게 방송했던 저만의 방식이었죠. 종종 까다롭다는 얘기까지 들었으니까요. 그게 지금까지 방송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이고요."

<강적들>에서 동료 진행자들은 그녀를 ‘오래된’ 아나운서 혹은 ‘옛날’ 아나운서라면서 종종 농을 던진다. 얼핏 속상할 것 같은데 외려 그녀는 가볍게 웃어넘긴다. 웬걸, 솔직히 전쟁터 같은 방송가에서 20년 넘게 버티는 자신에게 감동의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자꾸 도전하고 시도할수록 무엇인가 감칠맛이 돈다.

신기하게도 올해 들어 그녀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힘은 들지 않았다. 체력은 방전되는데 마음은 가벼운 이상현상이다. 드라마가 설레는 도전이었다면 스스로 기획한 토크콘서트는 짜릿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뭉뚱그려 간단히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그녀는 오늘도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단히 각인시키는 중이다. 나쁜 여성의 이미지든, 성공에 목마른 드라마 속 배역이든, 껍질은 뭐라도 상관없다. 이 들꽃 같은 여성은, 오늘도 방송가에서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가감 없이 인간 김성경을 펼쳐 보이고 있다.